밀린 숙제를 이제야 제출한 애플과, 집토끼를 잃은 민주당. 오늘의 두 이야기는 결국 모두 기초에 관한 것이다 — 한쪽은 운영체제의 기초, 다른 쪽은 지지층 마음의 기초.
WWDC와 Apple Intelligence — “놀라운 신기능”이 아니라, 2년 전의 약속을 이제야 실제로 동작하게 만든 행사.
애플 행사가 예전만큼 화려하지 않은 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이번 WWDC 역시 새로운 충격보다는, 그동안 미뤄온 AI 관련 숙제를 이제야 제출한 행사에 가까웠다.
팀 쿡 체제의 애플은 수익성에서 여전히 압도적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견고했던 만큼, AI 전환에 절박할 이유가 없었고 필요한 개선을 미뤄왔다.
앱 실행·사진 로딩·AirDrop·iPadOS 전송 속도 개선 수치를 잔뜩 내세운 것 자체가, 그동안 이 부분들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역설적 증거처럼 읽힌다.
Apple Intelligence의 본질은 일반 챗봇이 아니다. 기기 안의 개인 데이터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답하거나 작업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일반지식만으로는 안 된다. 메시지·메일·캘린더·사진·파일·연락처에 접근해,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Apple Intelligence는 결국 다음 세 단계 위에 서 있다.
기기 안의 개인 데이터가 먼저 잘 인덱싱되어 있어야 한다.
AI가 그 인덱스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안정적으로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
검색된 정보를 바탕으로 LLM이 자연스럽게 답변하거나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iPhone·macOS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메시지를 검색해도 결과에 나오지 않는 일이 잦았다. 사람이 직접 검색할 때도 불편했지만, AI에는 훨씬 치명적이다. 검색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면, 그 위에 얹힌 AI 답변도 신뢰할 수 없다.
이번 WWDC의 가장 중요한 발표는 화려한 데모가 아니라, iOS·iPadOS·macOS의 Spotlight·메일·검색 기록을 대대적으로 손본 것 — Apple Intelligence의 ‘기초공사’였다.
이번 발표에서 Gemini가 언급됐지만, 단순히 “애플이 Gemini API를 호출해서 쓴다”고 보긴 어렵다. 꽤 깊은 기술 협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핵심은 모델 디스틸레이션일 가능성이 크다.
큰 모델의 지식과 능력을 더 작은 모델에 전달해 훈련시키는 방식. 즉 Gemini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보다, Gemini를 통해 Apple Foundation Models를 더 잘 훈련시키는 협업이었을 가능성이다.
이는 온디바이스·프라이버시 중심으로 작동해야 하는 애플의 구조와도 맞아떨어진다. 외부 모델을 그대로 부르기보다, 자체 모델을 개선해 운영체제에 깊이 통합하는 편이 애플에겐 더 자연스럽다.
Gemini라는 대형 모델의 지식을 활용해, 애플 생태계 안에서 돌아갈 작고 프라이버시 친화적인 자체 모델을 끌어올린다. ‘빌려 쓰기’가 아니라 ‘배워 오기’.
그동안 Siri는 지능형 비서라기보다, 타이머 설정과 간단한 명령에 특화된 제한적 도구에 가까웠다. 맥락이 필요한 질문 앞에서는 무력했다.
새 Siri 기능 중 가장 인상적인 건 visionOS에서의 활용이다. Vision Pro는 사용자가 보고 있는 공간과 사물을 어느 정도 인식한다.
공간 컴퓨팅 환경에서 AI 비서가 단순 음성 비서를 넘어, 사용자의 시야와 공간 맥락을 함께 이해하는 존재가 된다.
명시적 호출 없이 시선과 발화만으로 상호작용. 화면에 떠 있는 Siri 구체를 바라보고 말하면 명령으로 인식한다.
“다음 주 월요일 오후 3시에 누구와 회의”라고 적으면, 시스템이 이를 일정으로 변환. 음성으로 Siri에게 요청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메시지 대화 중 일정·메모로 옮길 만한 내용이 있으면, 문맥을 파악해 하단에 버튼을 띄우고 자동 추가한다.
대기 명단으로 직접 써보진 못했지만, 베타 반응을 보면 홍보 기능들이 대체로 실제로 작동한다. 일부 쿼리·인프라 한계는 여전하다.
민주당 내부 정치, 친김민석계 논란, 그리고 서울시장 선거 데이터 — 구심점이 사라진 자리에서 벌어진 일들.
윤석열 시기엔 정치평론이 지나치게 쉬웠다. 비판만 해도 대부분 맞는 말처럼 들렸고, 검증되지 않은 인물도 “윤석열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편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강한 반대 축이 사라지자, 가려져 있던 내부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 일종의 솎아내기 과정이다. 오창석의 유시민 비판처럼, 급이 맞지 않는 원색적 비난이 갈등을 키우는 사례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이재명은 윤석열 정부·검찰 수사·내란적 국면을 돌파한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행정의 영역으로 옮겨갔다.
대통령이 당무에 직접 개입하긴 어렵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채울 역량과 정서적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점.
여러 인물이 “내가 구심점이 되겠다”며 나섰고, 기대만큼 감각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내부 갈등과 혼선이 커졌다.
김민석은 능력 없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능력은 있지만,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의 배분이 잘못되어 있다는 평가다.
유시민의 ABC론은 국민을 갈라친 게 아니라, 정치인·정치 집단의 속성을 분석한 것이다 — 세상엔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과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김민석의 행동은 개인·계파적 이익 관점에선 이해된다. 다만 그 합리성은 보편적 합리성이 아니라, 자기 정치 구도 안에서의 합리성이다.
민주당 지지층에게 중요한 건 역사적 명분·도덕성·개혁의 약속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의 기준에서 어긋나면,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외면받는다.
검찰 권력을 손에 쥐는 게 정치적으로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당 지지층이 보는 ‘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김민석은 친노→친문→친명으로 이어진 주류 흐름과 거리가 있었고, 검찰개혁 국면을 핵심 지지층과 같은 방식으로 통과하지 않았기에, 그 감각이 부족할 수 있다.
정청래 대표는 뚜렷한 계파도, 강한 기반도 없어 공격할 지점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꺼내든 키워드가 “친문”이었다 — 그러나 이는 지지층 정서를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었다.
정청래 대표를 친문이라 공격해도, 많은 지지자는 “오랜 친문이면 우리 편 아닌가”라고 받아들인다. 결국 친문 공격은 문재인 자체를 악마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핵심 지지층 상당수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
모두 민주당 지지층 안에서 강한 지지와 애정을 받는 인물들. 이들을 한꺼번에 적으로 규정하는 건, 친김민석계가 당의 역사·정서·당원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로 읽힌다.
서울은 여론조사상 민주당이 불리하지 않았는데도 패배했다. 그래서 실제 득표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전통적 구도는 분명하다. 민주당은 강북·강서에서 표를 벌고, 국민의힘은 강남 3구에서 강하게 득표한다. 승패는 민주당이 우세 지역에서 얼마나 크게 이기느냐와 국민의힘이 강남권에서 얼마나 크게 이기느냐의 균형에 달려 있다.
여기에 강남 3구의 큰 인구 규모와 보수 결집이 결합되며 전체 승패를 갈랐다. 용산은 대통령실 이전 이후 보수화가 강화됐고, 서남권 일부도 공시지가 상승과 맞물려 보수화 조짐을 보였다.
여론조사상 중도층 지지도·정당 지지율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지지가 실제 투표로 전환되지 않았다 — 지지한다고 답한 이들 중 상당수가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낮고, 중도층은 후보를 잘 모른 채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본질적으로 집토끼 싸움이다 — 누가 더 적극 지지층을 많이 데려오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보수 출신을 영입한다고 중도 소구력이 자동으로 생기진 않는다. 김용남 공천은 단순한 중도 확장이라기보다, 조국을 견제·타격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수 있다 — “조국의 강을 넘어야 한다”는 인식의 연장선. 다만 정치는 생물이라,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
계산과 책략은 있지만, 지지층이 열렬히 따르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부족하다. 감동보다 짜증과 피로감을 준다.
외부의 적과 싸워야 할 때 내부의 문·조·털·레·유를 더 강하게 공격하는 모습은, 핵심 지지층을 투표장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선관위가 일을 제대로 못 했다는 비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선거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면 재선거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투표 자체가 사라질 뻔한 계엄적 상황엔 침묵하다, 불리할 때만 참정권을 말하는 일부 극우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 “선관위가 문제였으니 계엄이 정당했다”는 식의 주장은 반박할 가치가 낮은 억지다.
지대모 사이트의 서울시장 선거 데이터 리포트를 본격적으로 이어서 분석한다. 선관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울의 모든 투표 데이터를 구별·동별로 시각화한 리포트다.